침묵도 하나님의 언어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기도한 지 오래됐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분명 간절했고, 눈물로 매달리기까지 했는데도 하늘은 그저 조용합니다. 그럴 때 마음속에는 여러 질문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 걸까. 내 기도가 부족한 걸까. 혹시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흥미로운 것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가장 깊이 사랑했던 사람들도 똑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시편 곳곳에서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따져 물었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아예 대놓고 항의했습니다.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나이다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윗과 하박국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침묵 앞에서도 등을 돌리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가 따져 물었다는 것. 그러니 지금 느끼는 서운함과 답답함은, 신앙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과 씨름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응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대개 세 가지 방식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렇다, 아니다, 그리고 기다려라. 문제는 우리가 오직 첫 번째만을 응답이라 여긴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아니다"나 "기다려라"라는 응답을 이미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침묵이라 오해하곤 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그가 "육체의 가시"라 부른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없애 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가시의 제거가 아니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바울이 원했던 답은 가시의 제거였지만, 그가 받은 답은 은혜의 충분함이었습니다. 우리도 종종 문제의 해결을 구하지만, 하나님은 그 문제 한복판에서 함께 계시는 임재로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원하던 답이 오지 않았다고 해서, 응답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침묵의 시간을, 오늘 우리는 어떻게 지나야 할까요.
요청에서 임재로. "이것을 해주세요"라고만 구하던 기도에, "지금 이 자리에 함께 계셔 주세요"라는 기도를 더해 보세요.
기록하기. 무엇을 구했는지, 지금 마음이 어떤지 짧게라도 적어보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어떻게 다뤄오셨는지가 나중에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혼자 견디지 않기. 지금 붙들고 있는 기도 제목을 목장 식구에게 나눠보세요. 함께 기도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침묵의 무게는 가벼워집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부재의 증거가 아니라, 때로는 더 깊은 일하심의 시간입니다. 지금 이 기다림 가운데도, 주님은 여전히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